대뇌망상

세상에 나만의 것을 남기고 싶은 분들에게

관심가는 주제에 대한 공부를 해보고 싶어서 짬을 내어 공부하는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을 적극 활용하여 가치나 재화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최근 저는 각각에 ‘그냥 하는 일’과 ‘문제를 올바르게 정의하는 일’ 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저는 대학을 다니며 회사를 다녔는데요, 이때 문제정의라는 것을 자칫 잘못하면 거대한 삽질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문제정의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가 배운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포스팅을 해 볼게요. 여기서 배웠던 아주 뼈저린 교훈을 삶에도 적용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인생도 목표정의를 제대로 않고 그냥 지금 당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험과 행동만 해나간다면 환경에 의존적인 사람이 되어버릴지 모른다고 의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 공포감에서, 문제정의와 정의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구분해야 한다는 디자인 씽킹이라는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인생 프레임워크를 설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이 세상에서 나만의 것을 남기고 싶은 욕망을 가진 분들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다양한 관점으로 유연하게 사고하면서 재미있는 일을 벌이고 풍족하게 사는 사람이 되고 싶은 분들이요. 그래서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분들 말입니다.

몰입에 대한 세간의 두 가지 시선

수많은 자료들이 ‘몰입’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무엇인가에 무아지경 몰입할 수 있을 때야말로 내 안의 잠재력을 모두 끌어낼 수 있으며,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저도 개인적으로 몰입이 빠른 성장에 큰 도움을 준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과는 반대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빠져나와 환기를 하는 일들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도 존재합니다. 자신이 문제를 올바르게 정의하고 있는지를 환기하는 ‘메타인지’ 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나, 충분한 육체적 휴식, 뇌를 쉬어주는 정신적 휴식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나, 취미 등 여분의 시간을 투여하여 뇌를 오히려 자극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제가 휴식으로 분류하는 활동은 딴생각을 조금 하는 것입니다. 무언가에 완전히 집중하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주의력을 통제할 필요가 없는 상태입니다. (크리스 베일리, 생산성 전문가)
- 올가 메킹(Olga Mecking), 생각 끄기 연습(Niksen - embracing the dutch art of doing nothing)
무위의 부정성은 사색의 본질적 특성이기도 하다. 예컨데 참선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들이닥쳐 오는 것에서 스스로를 해방함으로써 무위의 순수한 부정성, 즉 공에 도달한다. 이는 극도로 능동적인 과정이며 수동성과는 관계가 없다. 참선은 자기 안에서 어떤 주권적 지점에 도달하기 위한 연습, 중심이 되고자 하는 연습이다.- 한병철, 피로사회

심지어 생산성 주제 아래에는 현재 고민하고 있는 분야 혹은 맥락에서 강제로 벗어나 새로운 컨텍스트와 연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탈맥락화’ 같은 주장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스티브 잡스는 기계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제품으로 풀어낼 모든 힌트는 인문학에서 찾으려고 했다지요. 이러한 사람들이 하는 주장은 몰입주의자들에게 깜짝 놀랄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 데이비드 이스트번이 미국철학학회 강연 중에 했던 말을 살펴보자. “특정한 활동에 노동력을 추가 투입할 때 일정 수준이 지나면 만족감은 오히려 감소한다. 이때 다른 활동에 참여하는 방법으로 만족감을 올릴 수 있다.” 당시 이스트번은 경제학자로서 한계효용 개념과 고원 효과(the plateau effect) 를 언급했는데 이들 개념은 경제와 기업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 팀 페리스에 따르면, 이런 이유로 어떤 사람들은 “한 과목을 집중해서 공부하되 수확 체감이 급격히 떨어지는 지점을 넘기지 않는다.” ... (2년간 집중, 체계적으로 배운 사람과 10년간 찬찬히 공부한 사람의) 두 사람 간의 이해도 차이는 5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이는 흔히 80대 20의 법칙으로 불린다.
- 와카스 아메드, 『폴리 매스』

그런데 정말 이상합니다. 두 입장이 완전히 상충된다고 느껴지면서도 두 입장 모두에 일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몰입과 분산이라는 주제는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 중 어떤 삶을 살아가는 것이 유리한지에 대한 논의나, 창의적 생각을 하는 일에 몰입과 분산 중 어떤 것이 더 유리한지로도 이어집니다.

제가 추구하는 인생 단위의 커다란 가치 중 하나는 다재다능성입니다. 하지만 다재다능성이라는 것은 허상이고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는 주장도, 요즘 시대에는 오히려 다재다능한 사람이 다시 주목받을 것이라는 의견을 심심찮게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반대로 하나에 몰입해야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주장도, 하나만 해서는 창의력이 나올 수 없다는 주장도 4차 산업혁명이라는 키워드 아래 다시 강조되고 있습니다. 각 입장에 대한 논거는 충분히 풍부하고 설득력있습니다.

다재다능성을 추구하고 싶은 이유는, 창의적이고 창조하는 삶을 사는 일에 도움이 되는 특성일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즉, 제 삶의 여러 목표들 중 하나를 문장으로 정의하면 '창의적이고 창조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목표에 되도록이면 빠르게 도착하고 싶었기 때문에, 특정 태도 하나를 딱 골라서 지켜 나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 주제에 대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어느 한 쪽에 가중치를 매길 수 없었습니다. 저는 실제로 이것 때문에 엄청나게 큰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인생을 윤택하게 살려면, 몰입을 해야 한다. 그런데, 또 몰입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추구하는 삶을 지독하게 살고 싶은 나같은 사람에게 ‘제너럴과 스페셜함 둘 다 중요하니 둘 사이에서 적당히 밸런스를 찾으라’ 혹은 ‘뭘 그렇게 인생을 복잡하게 사느냐’ 같은 말만큼 무책임한 말도 없을 것입니다. 결국 시간이 갈수록 남들이 하나의 지식을 배울 시간에 세네개 지식을 빠르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강박으로 이어졌습니다.

두 가지 시선의 합치

정의되지 않은 스트레스를 겪은 지 2년이 지나서 저는 제 나름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저는 어떤 것이 몰입에 대한 적절한 기준인지 정말 오랜 시간 고민한 결과, 둘은 상충되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아주 번뜩이는 결론을 얻었던 것입니다.

문제정의에 몰입하라

사람이라는 존재는 몰입할 때 높은 생산성을 보입니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그것은 참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사회에서 높은 가치를 가진 사람으로 인정받는 일이 허다하지요. 수많은 전문직들뿐 아니라 특정 커리어를 밟아 나가는 사람들이 그 증거입니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몰입도 항상 유지될 수는 없습니다. 몰입이 깨지는 순간은 필연적으로 오게 됩니다. 저는 다른 글에서 환경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고, 몰입을 위해 환경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환경적 요인도 때때로는 생산성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령 다음날 중간고사 시험이 있어도 그 과목을 하기 싫으면 꾸역꾸역 하면서도 뇌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아무리 절박한 환경에 있어도 뇌가 피로하여 하기 싫은 것을 하게 만들기 어렵다는 것은 이미 우리에게 경험을 통해 알려져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80:20 법칙’ 은 하나의 몰입 상태를 지속하는 경우 생산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주장 중 하나입니다. 하나의 주제에 대한 집중은 사람의 시야를 크게 좁혀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만들어 창조적인 생각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참입니다.

세계적인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의 본래 직업은 공무원이었습니다. 루만은 공무원 일을 하며 퇴근 후 남는 시간인 6시부터 10시 무렵까지만 생각 발전에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이드로 리서치를 하던 니클라스 루만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저작물을 남긴 교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다작의 비결로 ‘제텔카스텐’ 이라는 훌륭한 메모 방법론이 언급되곤 하지만, 아무리 메모 방법론이 훌륭하더라도 4시간으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었던 루만에 비해 오늘날 직장인들의 사이드 프로젝트 성공률은 지나치게 낮은 것 같지 않은가요?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없이 주어진 일을 처리하면 되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확실히 루만은 공무원 일을 할 때 전혀 문제정의에 대한 리소스를 투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니클라스 루만에게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그냥 위에서 시키는대로 착실히 하면 되는 일' 이었을 뿐이고, 집에 와서 사용하는 4시간이야말로 올바르게 문제를 포착하고 가치를 만들 활동을 해 낸 것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니클라스 루만은 이 4시간동안 엄청나게 몰입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냥 하는 일에 몰입하라

분명히 효율적인 전환이 필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이럴 때가 바로 하고 있는 일을 바꿀 순간입니다. 하지만 그 바뀌는 일은 절대로 문제정의를 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제 정리된 생각의 핵심입니다. 앞서 저는 '관심가는 주제에 대한 공부를 해보고 싶어서 짬을 내어 공부하는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을 적극 활용하여 가치나 재화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의 차이를 ‘그냥 하는 일’‘문제를 올바르게 정의하는 일'의 차이로 정리했다고 언급했습니다. 효율적인 전환을 위해 새롭게 하게 되는 일은 '문제를 올바르게 정의하는 일' 이 아니라 ‘그냥 하는 일’ 이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스타트업을 하며 고객의 문제를 올바르게 정의하기 위해 몰두하던 사람이, 맥락 전환을 위해 투잡을 뛴답시고 다른 스타트업에서 우리 제품이 잘 판매되지 않는 핵심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해서는 안 됩니다. 혹은 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한 토론 주제를 들여다보며 문제의 본질을 정의하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전환되는 일은, 뚱딴지 없이 평소 궁금했던 생물학 공부를 한다거나, 그냥, 게임을 하고, 그냥, 유튜브를 보거나, 그냥, 악기를 하는 것이거나, 그냥, 평소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집중하여(문제를 정의하는 일이 아닙니다) 책을 읽는 일이어야 합니다.

이는 문제정의 및 목표수립 과정이 엄청난 피로감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문제정의를 하는 뇌에 피로감이 생기면 문제정의 자체를 하기가 싫어지거나 한 번 정의된 문제에 의심을 하기가 싫어지게 됩니다. 문제정의를 섣부르게 하려는 욕구를 ‘인지적 종결 욕구’라고 부릅니다. 인지적 종결 욕구가 충만한 상태에서 만들어진 목표는, 해당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동력을 낭비할 리스크, 삽질을 할 리스크를 안아 버린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냥 하는 일’은 가치나 재화를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에, 올바르게 문제를 정의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하면 됩니다. 이미 목표가 수립되어 있어서 누군가 시키는 일을 그냥 하면 되고, 그것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인지 무엇인지 알고, 시간을 들여 이것을 그냥 해내기만 하면 된다면, 이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이런 일은 문제정의로부터 만들어진 피로에 지쳐 나가떨어진 사람이 오히려 활력을 얻을 수 있는 일입니다. 하루종일 너무 힘들었다고 푸념을 하면서도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 책을 읽거나, 지친 몸을 이끌고 헬스장으로 가 몸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이제는 이해가 됩니다.

마무리

제 이야기가 효과적으로 전달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생산성을 위해 다짜고짜 여러 가지의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몰입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밥을 잔뜩 먹어도 과일 팥빙수가 목구멍 속으로 들어가듯 문제정의를 하는 뇌와 정의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뇌가 다르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문제정의를 하는 일을 한 개, 그냥 정의된 문제를 해결해 나가거나 단순히 학습해 나가는 일을 한 개 이상 할 때 높은 생산성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효율적으로 학습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짜고짜 아무거나 달려드는 태도는 위험합니다. 사람은 생각보다 많은 문제를 올바르게 정의해낼 수 없습니다. 날카로운 문제정의를 통해 엄청난 임팩트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그냥 하는 일을 꾸준히 지속함으로써 세상 도처에 깔려 있는 지식을 향유할 수도 있습니다.

이상적인 이야기같이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을 빼고 생존을 위해 일하는 시간을 빼도 시간은 남습니다. 적어도 인생에 있어서 스페셜리티와 제너럴리티는 적어도 서로 상반되는 개념이 아닌 듯 합니다. 다재다능성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책 『폴리 매스』의 저자 와카스 아메드가 책에서 내린 통찰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실 세계사적으로 어느 분야에서든 특출한 인물을 한 명 선정해 그들의 삶을 조사해보면, 이름을 알린 분야 외에도 다양한 관심을 품고 성과를 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어느 한 분야에서만 고도로 전문화된 사람을 발견하는 경우는 사실 드물다.
- 와카스 아메드, 『폴리 매스
이 세상에 정답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O를 외치는 세상에서 X를 외치는 사람들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이 블로그는 극단주의적 성향과 지배적인 여론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필자의 분석적인 시각으로 학창 시절에 얻으면 좋은 교육 인사이트와 생산성 컨텐츠를 위주로 포스팅합니다. Chat-GPT 등 생성 도구를 이용하여 작성하지 않습니다. 글은 사람에게 유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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